성경에 일점일획이라도 더하거나 뺐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들 가운데 누구도 죽임을 당하지도 않았으며 심지어 성경을 베끼면서 고의로 단어를 바꾸거나 집어넣은 사람도 천수를 다했다. 신약성경은 많은 사람이 손을 댄 작품이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썼다. 그 편지를 [고린도전서] 라고 하자. 이게 바로 ‘원문'(原文)이다. 바울 당시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했으니까, 아마도 바울의 편지를 받은 사람들은 그 편지를 간직하고 싶거나 다른 이유로 손으로 베꼈을 것이다. 원문에서 ‘사본'(寫本)이 나온 것이다. 이 사본을 어느 사람이 또 베꼈다면 ‘사본의 사본’이 만들어진다. 계속해서 사본의 사본을 또 베끼고 … . 그러다 보니 사본 끼리도 서로 다르게<異文> 되었다. 신약성경에는 이런 사본이 약 2만 5천 개가 되며, 지금도 사본이 발견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신약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세 가지 문제가 생기고 말았다. 첫째는 아쉽게도 바울이 처음 쓴 고린도전서가 지금 우리 손에 없다는 것이다. 언제 어디서인지도 모르게 바울이 친필로 서명을 남긴 고린도전서가 사라졌다. 둘째는 바울의 편지를 베끼던 사람(필사자)이 옮겨 쓰면서 실수를 하거나, 고의로 단어나 구절을 빼버리거나, 다른 단어로 바꿔 써서 처음 바울의 편지가 어떠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어떤 글을 그대로 베끼다 보면 좀 전에 썼던 행을 다시 쓰듯이, 또는 ‘내가’를 ‘네가’ 라고 잘못 쓰는 실수를 옛날 사람들도 그대로 범했다. 게다가 필사자가 베껴 쓰면서 자신이나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입장과 차이가 나는 부분이 나오면 슬쩍 빼버리거나 바꾸기도 했다. 셋째는 사본 끼리도 서로 다르다 보니 어떤 사본을 선택할 것인지 또 그 기준은 무엇으로 할지의 문제이다.

민경식 교수가 쓴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대한기독교서회, 2008)는 이 세 가지 문제를 시원하게 풀어준다. 민 교수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신약성경을 어떻게 베껴 썼으며, 우리에게 남겨진 수많은 사본을 갖고서 최대한 원문에 가깝게 다가가려는 모습(사본학과 본문비평)을 쉽고도 재미나게 소개한다. ‘사본학’이라든지 ‘본문비평’이라고 하면 성경학자들의 전유물로만 생각하기 십상인데, 그는 알아듣기 쉽도록 신약성경의 사본과 인쇄본에 대한 연구를 구수한 옛 이야기처럼 들려준다. 집안의 내력을 알려면 족보를 펼쳐보면 되듯이, 신약성경의 내력을 알고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술술 풀린다.

<신약성서, 우리에게 오기까지>를 읽으면 덤으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있다. 그것은 바로 ‘성경은 살아있구나’ 하는 깨달음이다. 성경 사본에는 필사자의 고민과 신앙고백이 숨어있다.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서, 바울이 쓴 편지를 대본 삼아 어느 필사자는 열심히 베끼면서 바울과 대화했다. 그 필사자가 남긴 사본을 또 다른 필사자가 베끼면서 고린도전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떤 때는 자기 신앙과 맞지 않아 고민하고, 어떤 구절에서는 성령이 베푸는 감동으로 몸을 떨기도 했을 것이다. 바울이 쓴 [고린도전서]는 고린도교회 교우 뿐만 아니라 이후 필사자들에게, 지금 신약성경을 읽는 우리에게 대화의 파트너로 살아있다. 그래서 저자는 ‘성경 자체를 우상화 하지 말자’고 한다. 성경은 오히려 ‘우리가 읽고, 고민하고, 묵상하면서 매만져야 할 대상이라고 한다.

이 책과 함께 민 교수가 번역한 <성경 왜곡의 역사. 누가, 왜 성경을 왜곡했는가>를 읽으면, 학자들의 논의 주제를 쉽게 설명해 주는 사람으로서 미국에는 바트 어만(Bart D. Ehrman)이, 우리나라에는 민경식 교수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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