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부 때 발제했던 것을 올려본다. 엉성하지만 그래도 공부의 흔적이니까….^^

 

 

1. 아울렌(G. Aulen)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속죄론에 있어서 고전적 견해는 드라마같고, 철저히 이원론적인 것이 그 전제가 된다.1 그래서 고전적 속죄론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악과 싸우시고 승리하심을 하나님의 주도적인 사건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고전적 견해의 전형적인 예는 Irenaeus이다. 그러므로 Irenaeus의 신학적 구조와 개념을 살피면 속죄론에서의 고전적 견해는 어떠한 것인지가 선명해 질 것이다.

2.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회복: Irenaeus의 회복설(Rekapitulationstheorie)

Irenaeus는 첫 번째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한 것을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가 하나님께 죽기까지 순종함으로 악에서 인간을 구원하고,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책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그리스도는 화육하심으로 인간이 되셔서 새로운 인간들의 세대를 창시하셨으며, 간단하고 포괄적인 방법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마련해 주셨으니, 이는 우리가 아담으로 말미암아 상실한 것, 즉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는 것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다시 회복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다.”2 그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다음의 성서구절을 그가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롬 5:18).3바로 여기에서 반증적으로 Irenaeus 신학구조의 전제는 세 가지로 드러난다. 첫째는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악의 세력이 실체적으로 또한 객관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를 도식으로 그려보면, 하나님, 악, 인간이 각각의 영역을 가진 집합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둘째는 첫 번째 아담의 타락으로 인하여 악에게 종되었었고,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가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통하여 악에게서 인간을 빼내어 다시금 하나님과 연관시켜 놓았다는 것이다. 셋째는 이러한 그리스도의 순종을 통하여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가 회복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을 의미한다. 그러면 여기에서부터 이제 의문점이 제기된다4: Irenaeus는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무엇으로 이해하는가? 그리고 Imago Dei의 회복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2-1 생명의 사귐으로서 Imago Dei

Irenaeus는 Imago Dei를 생명으로서 하나님과의 사귐으로 이해한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과의 사귐은 생명이고 빛이며 그에게 있는 선한 것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고의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자기에게서 떼어 버리시며 하나님에게서 떨어짐이 죽음이다”5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이 말의 근거로서 그는 요한복음 17장 21-23절의 말씀을 가져온다6: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 결국 Irenaeus의 회복설에서 가장 중심된 개념인 Imago Dei는 하나님과 인간의 사귐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7 그리고 이러한 사귐을 그는 ‘생명’으로 보는 것이다.8 그렇다면 여기서 또 다시 의문점이 드러난다: ‘고의로 하나님을 배반하는 사람은…’ 이라는 말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왜냐하면 ‘고의로’라는 말에서 우리는 ‘자유의지’를 간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유의지’의 문제가 대두된다는 것이다. 계속해서 자유의지와 Imago Dei의 관계성의 질문 또한 가능한 것이다.

2-2 ‘자유의지’로서의 Imago Dei

Irenaeus에 의하면 “죽기까지 그가 복종하심으로 말씀은 옛적에 (아담이) 나무에서 범한 불순종을 말살하였다”9고 한다. 이 말에서 역설적으로 드러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아담이 ’고의로‘ 불순종하였다는 것이다. 바꾸어 말해서 아담이 자신에게 부여된 자유로운 의사대로 하나님께 불순종하였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Irenaeus는 이 자유의지의 개념을 가치중립적인 것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Irenaeus의 이해는 하나님과 인간의 창조시의 사귐 혹은 관계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연속적으로 Irenaeus에게 있어서의 타락, 죽음, 죄 그리고 악을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거부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인간과의 인격적인 관계로서의 Imago Dei는 자유의지의 인간이 전제된다고 할 수 있다.10

2-3 Imago Dei의 회복자 그리스도 그리고 그의 순종

Irenaeus는 두 번째 아담으로서 그리스도를 Imago Dei의 회복자로 본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는 순종으로 불순종을 ‘회복(Rekapitulation)’하시고 말살하셨다”11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는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심으로 창조의 원-관계(Ur-Relation)를 회복하셨다는 것이다.12 그렇다면 여기서 또 다시 의문점이 제기될 수 있다: 속죄론에 있어서 Irenaeus가 악을 하나의 객관적 실체로 본다면, 두 번째 아담의 사역에 있어서 악은 실종되지 않았는가? 하는 점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고전적 개념을 엄밀한 의미에서 속죄론에서 구분할 수 있는 세밀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곧, 고전적 속죄 개념은 죄용서 또는 칭의(Rechtfertigung)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과 인간의 올바른 관계 개념에 있음을 주목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성서에서나 Irenaeus의 속죄개념은(굳이 속죄개념으로 말한다면)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그 관계의 단절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13 이 관계의 단절이 바로 죽음이요, 악의 세력에 종된 것이고, 생명을 잃는 것이다. 따라서 Irenaeus에게 있어서 Imago Dei 회복은 죽기까지 순종한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회복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14 그러므로 여기에서부터 반증적으로 고전적 견해의 하나님의 주도성(Die Souveraenitaet Gottes)이 이해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Imago Dei 회복의 주체가 되고, 동시에 이 회복을 통하여 – 회복의 의미로서 – 새로운 질서 내지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이다.

3. 결론과 문제점

이상과 같이 Irenaeus의 화해론은 먼저 하나님과 인간 그리고 악의 객관적 세 실체를 전제한다. 첫 번째 아담의 타락은 Imago Dei의 파괴를 가져왔다. Imago Dei는 하나님과 인간의 생명의 사귐이요, 하나님과 인간의 인격적인 관계로서의 자유의지이다. 그러므로 Imago Dei의 파괴는 결국 죽음이요, 이 죽음이 또한 죄이다. 그러나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가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인간에게 Imago Dei의 회복을 가져 왔다. 이 화해자 그리스도는 Irenaeus에 의하면 하나님 자신이다.15 이러한 점에서 Irenaeus의 화해론은 하나님 주도적이며, 객관적이다.

그러나 그의 화해론은 하나님 주도적이라는 측면에서 이후에 오히려 Anselm의 만족설(Satisfaktionstheorie)로 해석될 여지를 남겨 놓았다. 또한 그리스도의 철저한 순종이라는 면에서 Abelard의 주관적 견해, 즉 예수를 도덕적 완성자(das moralische Vorbild)로 해석될 수도 있는 여지를 남겨 놓았다.16 또한 Irenaeus의 견해는 화해 혹은 용서의 전제가 되는 심판의 측면에서 볼 때17, 죄인을 심판하지 않은 것이 된다는 것이다.

  1. G. Aulen, Christus Victor, 전경연 역, 속죄론연구, 복음주의 신학총서 4, 대한기독교서회 1983. 9f.
  2. Adeversus haereses, III, 18, 1. J.L. 니브, O.W. 하이크, 서남동 옮김, 기독교 교리사, 대한기독교서회 1992개정신판, 171ff에서 재인용.
  3. 빌 2장. 빌립보서 2장은 케노시스 기독론의 근거가 되는 장이다. Irenaeus는 두 번째 아담인 그리스도를 하나님 자신의 성육신으로 본다. 이러한 견해는 Irenaeus가 당시 영지주의의 주장, 곧 하나님에게서 로고스 혹은 영이 발출한다는 견해를 거부하는 데서 더욱 명백히 드러난다. 이에 대해서는 Hans-Jochen Jaschke, Irenaeus von Lyon, TRE XVI, S.262. 그리고 하나님 자신의 성육신에 대하여 하나님의 천사의 고찰을 통하여 기독론적 집중으로서 하나님의 자기억제 혹은 자기포기로 보는 M. Welker의 Der eine Gott der beiden Testament [JBTh Bd.2], Hrsg. v. Ingo Beldermann – Nobert Lohfink u.a., Neukirchen 1987, 194-209에 수록된 논문으로서, 논문의 원제목은: Ueber Gottes Engel. Systematisch-theologische Ueberlegungen im Anschluss an Claus Westermann und Hartmut Gese를 참고.
  4. 또한 제기되는 질문은 성육신의 이해에 관한 문제일 것이다. 화해론 혹은 속죄론을 말함에 있어서 성육신은 분리될 수 없는 개념이다. 성육신은 화해론의 전제가 된다. 그러나 짧은 이 글에서 성육신과 화해의 관계를 모두 고찰할 수는 없다. 이건 한 권의 책이라도 모자랄 것이다. 이 글에서는 Irenaeus의 Imago Dei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만 살핀다.
  5. Adv. Haer, v. 27,2. G. Aulen, 전경연 역, 속죄론 연구-승리자 그리스도, 27에서 재인용.
  6. R. Seeberg, Lehrbuch der Dogmengeschichte I, 407의 각주 1.
  7. G. Aulen, 전경연 역, 위의 책, 27ff.
  8. ‘생명’ 개념을 좀 더 들여다 보면 동방 교부들의 죽음 이해 및 성서적 죽음 이해를 고찰해야 한다. 여기서 간단히 결론만 말하자면, 동방 교부들은 죽음을 악에게 속하여 종된 상태로 본다. 그리고 성서에서도 죽음을 하나님과의 단절된 상태로 이해한다.
  9. Epideixis, 34. 위의 책 32에서 재인용.
  10. 만일 첫 번째 아담이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성육신, 십자가 죽음 그리고 부활 등은 모든 것이 하나님 자신의 동일성 추구를 위한 만족설(satisfaktionstheorie)로 이해될 수 밖에 없다. 이것은 하나님 주도성의 의미와는 다르다.
  11. Adv. Haer. III., 21. 10; 22. 4. 위의 책 32에서 재인용. 그리고 빌 2:8; 고후 5:19.
  12. 아울렌은 그리스도 순종의 전형적인 예로 예수의 광야시험을 말한다. 참고구절. 마 4:1-11; 막 1:12-13; 눅 4:1-13.
  13. G. Aulen, 전경연 역, 속죄론 연구, 24ff.
  14. 이러한 Irenaeus의 입장을 R. Seeberg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모든 면에서 회복설을 통하여 필연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 회복설에서 죄용서는 고유한 특성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기능적인 것으로서 드러난다. 이 기능은 그리스도가 자신의 신성(Gottheit)을 능력으로 수행하신 것이다”(참조. R. Seeberg, Lehrbuch der Dogmengeschichte I, 411). Irenaeus의 입장은 Adversus haereses IV, 33, 2. V, 17, 1. 3. 따라서 우리는 엄밀한 의미에서 속죄론의 고전적 견해를 화해론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올바른 이해인 것을 알 수 있다.
  15. 각주 3번.
  16. 이에 대하여 J.L. 니브, O.W. 하이크, 서남동 옮김, 기독교 교리사, 173-174.
  17. 만일 화해나 용서에 심판이 전제되지 않는다면, 결국 하나님의 화해는 하나님의 자기동일성 이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이럴 때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인격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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