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네스 라우는 독일 대통령을 했던 사람이다. 라우는 우리가 생각하는 날라리 정치꾼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진짜 정치꾼이다. 라우가 작고한 후, 그를 존경하던 사람들이 그가 평소에 했던 설교와 강연을 모아서 낸 책이 바로 [어쩔 수 없는 숙명이라는 말은 무신론자나 하는 말입니다]란 책이다. 원서 제목은 Wer hofft, kann handeln인데, 우리말로는 <희망하는 사람은 행동할 수 있습니다>로 옮기면 어떨까.

라우는 우리가 흔히 하는 말로 <개천에서 용난 케이스>의 사람이다. 그는 정규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우리로 따지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다가 예수님의 산상설교를 정치 현장에서 실천해 보리라는 <희망>을 품고 그는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의 연설이나 설교는 그의 가슴속에서 생동하던 <희망>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의 별명이 <독일의 수도사>였다는 것은, 그가 품은 희망이 단순히 열정이나 정열이란 말로는 다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을 위한 열정 쯤과는 비교할 수 없는 <희망>이다. 그가 품은 <희망>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살려는 구도자의 가슴속에 스며있는 <희망>이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베푸신 <희망>을 붙잡고, 그 <희망>의 십자가를 지고 그를 따르려는 자의 가슴속에 있는 <희망>이다.

이 책이 주는 유익함은 라우의 설교만이 아니라, 옮긴이의 매끄러운 번역과 역주도 한 몫 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요즘 우리나라와 비교 안 할 수가 없다. 이런 사람이 대통령이 되는 나라가 부럽다.

읽으며 은혜 받은 몇 구절을 소개한다.

우리는 우리 삶과 기쁨과 고통과 소망과 확신을 그 어떤 황제, 그 어떤 독재자, 그 어떤 민주 정치가에게도 주지 아니하고, 오로지 하나님 그분께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아는 그분의 형상은 오로지 십자가에 못 박히고, 모욕을 당하며, 관원들에게 버림받은 사람의 형상입니다. 그 형상은 우리가 더 이상 시험에 걸려 넘어지지 아니하고, 당신이 우리에게 숨기신 그날, 당신이 우리로 하여금 사랑의 하나님이시자 의의 아버지이신 당신 모습을 깨닫게 하실 그날을 앙망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당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분의 형상입니다. 131쪽.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 받고, 그분과 더불어 살며, 그분과 함께 죽고, 그분과 더불어 순간으로부터 믿을 수 없는 역사 속으로 옮겨진 사람들에게는, 부활이 그저 상징이 아니라 활짝 열린 미래입니다. 부활이 다가올 미래라는 사실, 그 사실이 사람을 바꾸어 놓습니다. 168쪽과 173쪽.
우리는 소수의 사람만이 더욱더 부유해지고 다수의 사람들은 더욱더 곤궁해지는 현실에 익숙해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밖으로 쫓겨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우리들 가운데로 끌어당겨야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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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이후로 우리는 헌법이 “떡갈나무나 바위에서 자라나지 않고” 사람들의 인격으로부터 자라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는 곧 정치 질서가 그 시민들의 관점과 확신, 전통과 모범에 든든히 뿌리를 내리고 있을 때에만 비로소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00쪽.
교회사는 온통 오류투성이였던 많은 사람들이 걸어온 길의 역사입니다. 언젠가는 우리의 오류도 이야기될 날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의 교리적 입장들을 올바로 수호하였는가를 묻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사람들은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고 그 답을 들으려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소망이 있다는 표지를 심어주었는가?” 257-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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