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상깊은 구절 몇 개를 옮긴다.

우리가 영성생활을 하는 이유는 풍부한 지식을 축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룩한 순간들을 마주하기 위해서다. 사람을 감복시키는 것은 사물이 아니라 영적인 현존이다. 영혼 속에 갈무리되는 것은 통찰의 순간이지 행위가 일어난 장소가 아니다. 통찰의 순간은 행운이다. 46쪽.

고대 랍비들은 인간이 회개할 때 인간의 죄를 벗겨주는 것은 속죄일의 준수가 아니라 속죄일의 정수인 속죄일 자체라고 말했다. 50쪽.

카도쉬(qadosh)라는 고귀한 단어는 창세기에서 단 한 번 사용되었다. 이 단어는 창조 이야기가 끝나는 대목에서 차음 사용되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씀에서 보듯이, 이 단어가 시간에 적용되었다는 것은 실로 의미심장한 사실이다. 51쪽.

안식일의 의의는 공간 보다는 시간을 경축하는 데 있다. 53쪽.

우리는 한 주에 엿새 동안은 땅에서 이윤을 짜내며 이 세계와 씨름하지만, 안식일에는 영혼 속에 심겨진 영원의 씨앗을 각별히 보살핀다. 57쪽.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 가운데 가장 마지막 작품이자 하나님이 의도하신 것 가운데 가장 첫번째 작품”인 안식일이야말로 “천지창조의 목적”이다. 59쪽.

창조보다 우위에 있으면서 창조를 완성한 것이 바로 안식일이다. 안식일은 이 세계가 경험할 수 있는 영의 전부다. 71쪽.

” … 시간을 공간과 맞바꾸는 자가 영원을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을 영으로 채울 줄 아는 자가 영원을 획득한다” 101쪽.

이것이야 말로 문명의 문제를 푸는 열쇠다. 그것은 공간의 영역에서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공간의 사물과 함께 일하되 영원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110-111쪽.

시간이 시작되던 그 처음에 한 갈망이 있었다. 그것은 안식일이 인간을 향해 품은 갈망이었다. 118쪽.

안식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시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영이다. 149쪽.

성전이 거룩한 장소가 되었다. 하지만 성전의 거룩함은 스스로 난 것이 아니었다. 성전의 거룩함은 지정된 것이다. 157쪽.

사람들이 안식일을 저버린다고 해도, 안식일의 거룩함은 없어지지 않는다. 159쪽.

안식일은 영혼들의 세계이자, 시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영이다. 160쪽.

“… 창세기는 창조의 발상지를 말하지 않고 창조의 날들에 대해 말한다. 신화들은 창조의 시간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반면에 성서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진 공간의 창조를 언급한다” 172쪽.

우리의 세계는 태초부터 마지막 때까지 시간을 통해 움직이는 공간의 세계다. 175쪽.

시간은 공유의 대상이고, 공간은 소유의 대상이다. 공간을 소유하면 다른 모든 존재의 적수가 되지만, 시간 속에서 살면 다른 모든 존재와 동시대인이 된다. 178쪽.

시간은 하나님이 공간의 세계에 주시는 선물이다. 181쪽.

공간의 정복, 피라미드, 명예를 통해서는 시간의 문제를 풀 수 없다. 시간의 문제는 시간을 성화함으로써만 풀 수 있다. 시간처럼 붙잡기 어려운 것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변장한 영원이다. 181쪽.

공간을 정복하고 시간을 성화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에게 주어진 과제다. 182쪽.

 

아래는 저자 헤셸의 딸이 소개한 글에서 발췌한다.

“안식일은 애무하듯이 다가와 두려움과 슬픔과 어둔 기억을 닦아 없앤다” 25쪽. <- 헤셸이 평소에 안식일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고 함.

시간 속에 성스러움을 세우려면, 공간 속에 성당이나 사원을 세우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 필요하다. 34쪽.

“안식일은 이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현존, 인간의 영혼에 개방된 하나님의 현존이다.” 하나님은 공간의 사물 속에 계신 것이 아니라 시간의 찰나 속에 계신다. 3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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