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이웃이 누구냐 (눅 10:25-37)

By | 2017년 9월 7일
눅 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나서, 예수를 시험하여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겠습니까?” [26]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율법에 무엇이라고 기록하였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고 있느냐?” [27] 그가 대답하였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힘을 다하고 네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여라’ 하였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하였습니다.” / ㉣신 6:5 ㉤레 19:18 [28]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답이 옳다. 그대로 행하여라. 그리하면 살 것이다.” [29] 그런데 그 율법교사는 자기를 옳게 보이고 싶어서 예수께 말하였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3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서, 거의 죽게 된 채로 내버려두고 갔다. [31] 마침 어떤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2] 이와 같이, 레위 사람도 그 곳에 이르러 그 사람을 보고, 피하여 지나갔다. [33] 그러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길을 가다가, 그 사람이 있는 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측은한 마음이 들어서, [34] 가까이 가서, 그 상처에 올리브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맨 다음에, 자기 짐승에 태워서, 여관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주었다. [35] 다음 날, 그는 두 ㉥데나리온을 꺼내어서, 여관 주인에게 주고, 말하기를 ‘이 사람을 돌보아주십시오.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오는 길에 갚겠습니다’ 하였다. /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 [36] 너는 이 세 사람 가운데서 누가 강도 만난 사람에게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 [37] 그가 대답하였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여라.”

어느날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영생 문제를 질문한다.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나요?’ 예수님은 율법교사에게 되묻는다. ‘너의 전공인 율법에는 무엇이라 나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나님 사랑하기와 이웃 사랑하기입니다.’

율법이 자신의 전문 영역인 율법교사는 영생 문제가 율법의 핵심임을 알았다. 이것만해도 대단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쉬운 면은, 자기가 무엇을 행해야 영생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이다. 오늘 우리의 말로 바꾸면, ‘내가 무엇을 투자해야 영생을 가질 수 있나요?’

예수님의 유명한 비유가 시작된다. 강도 만난 사람이 쓰러져있는데 그 옆을 제사장이 지나가고, 레위인이 지나가고, 마지막으로 사마리아인이 지나갔다. 앞의 둘은 그냥 지나갔는데, 사마리아인이 그를 도와주었다.

‘누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냐?’ 예수님이 묻자, 율법교사는 대답하기를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율법교사는 차마 사마리아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 자존심이 있어서이다. 율법교사는 유대 지방사람인데, 그들은 사마리아 지방 사람을 사람으로 안 봤다. 피가 더러워졌다는 이유 때문이다.

예수님은 선한 사미리아 사람 비유를 일부러 말씀했다. 사마리아 사람과 자기를 일치시킨 것이다. 유대 사람이 멸시하고 경멸하고 거부하는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유대 사람을 구해 준다는 설정을 하고 자신을 사마리아 사람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래서 이 비유 말씀은 선을 행하자는 구호로 끝나지 않으며, 또한 착하게 살아야만 영생을 취할 수 있다고 하지 않는다. 사실 선을 행해서 영생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예수는 이 말씀에서 자기를 드러낸 것이다. 영생 이라는 무겁고도 중요한 주제를 착하게 살라는 윤리 문제로 끝내지 않고, 영생을 위한 자신의 사역을 계시한 것이다. 그래서 이 말씀을 예수님의 자기 계시의 말씀으로 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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