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이 공공선을 주장하는 신학적 근거

By | 2017년 9월 7일

한국기독교학술원 공개 세미나에서 발표를 들었다.

오늘날 교회의 공적 책임이 절실하다는 것은 타당하다.

교회가 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칼빈에게서 교회의 공적 책임의 근거를 찾아 보는 시도를 했다.

그 개념이 바로 공공선(common good)이다.

칼빈이 공공선을 주장하는 신학적 근거는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할 수 있는데,

그 첫째가 하나님의 형상 개념이다.

나머지 두 가지는 기억이 분명하지 않다(발표 자료집을 안 봐서…).

아마도 성화 개념과 율법 개념이지 싶다.

발표자는 칼빈의 하나님 형상 개념을 설명하면서, 인간 타락이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한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하나님 형상이 다 파괴된 것은 아니라고 했다. 마치 나무를 베고 나면 뿌리가 남듯이 그렇게 남아 있다고 했다.

이것은 한 마디로 사람에게는 뭔가 서로 공유하고, 연결될 수 있는 뭔가가 남아 있다는 거다.

파괴되지 않고 사람에게 여전히 남아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공적인 선을 얘기할 수 있는 근거라는 건데…

발표자는 이것이 칼빈이 아리스토텔레스나 아퀴나스와는 다른 점이라고 하는데, 나는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물론 칼빈이 그렇게 생각했다면야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만은…

어쨌든 하나님 형상 개념으로써 공공선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뒷받침하는 것이 올바른가?

이것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축소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사역으로부터 실천적 차원에서 공공선을 얘기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나 싶다.

자꾸만 사람에게서 뭔가 공통의 선한 그 어떤 것을 찾는 시도는 그만두자.

성경에 어디 사람에게 선한 구석이 있다고 했나?

심지어 예수님 조차도 ‘선한 이는 오직 한 분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나?

그러므로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신 일이 선한 것이고,

그 행하신 선한 일을 근거로 이에 대한 사람의 응답의 윤리 내지 응답의 실천으로 공공선을 얘기하는 게 옳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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