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회퍼의 천재적인 초기 교회론(미하엘 벨커) 논문을 읽었다.

사람들이 본회퍼의 교회론을 성령과 “교회공동체로 존재하는 그리스도”라는 결론만 알고 있을 뿐이지 본회퍼가 그렇게 얘기하게 된 과정은 잘 모른다고 벨커는 생각한다. 본회퍼의 교회론 연구는 이미 1920년대에 그가 다학제적(간학문적)으로 연구한 박사학위논문에 나타나는데, 사회철학적 방법과 사회학적 방법으로 현실의 교회를 파악하고, 거기에 신학적 연구로 마무리 한다. 이점에서 벨커는 본회퍼가 우리에게 천재의 면을 보여 준다고 한다. 본회퍼가 지금까지 그 어떤 교회론보다 훨신 더 훌륭한 작업을 했다는 것이다. 벨커가 분석한 본회퍼 박사학위논문의 틀은 인간의 자기연관성, 인격 상호 간의(혹은 개인 간의) 나-너 관계, 복합적인 사회성의 형식과 그 연관성, 마지막으로 하나님과의 연관성인데, 본회퍼는 이 복합적 틀들을 간학문적으로 잘 다루었다는 것이다. 즉 개인이 자기 개별성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어떻게 집단 내지 교회와 관계(개별성과 집단성)를 맺고 있으며, 거기에 개인과 교회는 하나님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를 사회학과 철학 그리고 교의학을 통해 잘 분석하고 제시했다는 것이다.

본회퍼는 철학사를 훑으면서 헤겔의 정신 개념을 수용한다. 헤겔의 정신 개념의 도식은 “하나의 나, [객관적] 우리, 그리고 나와 동일시 된 하나의 우리”(ein Ich, das Wir, und ein Wir, das Ich ist)인데, 본회퍼는 이 도식으로써 자신의 “집단인격” 개념(아담과 그리스도)을 전개한다. 여기서 본회퍼는 절대정신과 성령을 구분한다: “객관적 정신과 성령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중요한 점은 객관적인 정신이 성령을 규정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객관적인 정신을 각인하고 형성시킨다는 것이다”(번역문 12페이지). 물론 벨커도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겔의 정신 개념은 그 근본구조상 성경이 말하는 성령 개념과는 다르다고 한다. 왜냐면 아리스토텔레스와 헤결의 정신(영)은 자기연관적으로 개별적 인격이거나 혹은 집단인격인데 반해, 성령은 자기연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벨커는 본회퍼가 교회의 존재적 근거를 제대로 제시했지만, 그가 교회의 실제에 있어서 간과한 점이 있다고 한다. 벨커는 본회퍼의 교회론에 성서적-성령론적 방향성을 추가하면 더 좋겠다면서 자신의 성령론을 제안한다. 벨커가 보기에 성경에는 성령과 성령 역사의 분화된 구조가 나타나는데, 본회퍼는 아직 그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 예로 초기 기독교에 매우 중요했던 “영들의 구별”(영분별)의 과제는 객관적인 정신과 성령을 구분하거나 올바른 선후 질서를 정하는 것으로는 적절하게 파악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내가 이해한 말로 바꾸면 이렇다. 우리는 교회가 성령이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공동체라고 정의를 내리지만, 실제 우리가 교회에서 경험하는 것은 선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다툼도, 권력투쟁도, 상처주고 입기 등등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는 벨커의 예리하고 세심한 눈매를 느꼈다. 본회퍼의 박사논문인 <성도의 교제>를 읽고 나서 벨커의 성령론도 읽으면 더욱 괜찮은 그림이 그려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벨커는 신학이 자기 혼자만의 길을 걷지 말고, 다른 학문과 대화하며 길을 가라고 한다. 본회퍼가 그런 길을 모범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런데 벨커는 간학문적 연구도 좋지만, 신학이 다른 학문과 대화하되 <성서적>이라는 단어를 잃으면 큰일난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한다.

 

논문 받기: 미하엘 벨커_본회퍼의 천재적인 초기 교회론.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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