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예정 (로마서 9장을 읽으며)

By | 2017년 9월 7일

로마서 9장은 난해한 장이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사람이라 해서 다 이스라엘이 아니고,

아브라함의 씨라 해서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이삭으로부터 난 자만이 아브라함의 씨라는 것이다.

바울은 정리하기를,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고,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김을 받는다고 했다.

그러면 당장에 드는 생각이 그러면 이스마엘은? 이후 세대에서 그러면 에서는?

누가 이스마엘이 되고 싶어서, 에서가 되고 싶어서 그렇게 태어났나?

누가 파라오(바로)가 되고 싶어서 되었나?

누가 한국인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그렇게 태어났나?

바울은 이 모든 게 하나님의 뜻에 따랐다고 했다.

그래서 사실 우리 귀에는 좀 야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바울은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긴다”고 모세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갖다 붙인다.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 파라오와 이스라엘의 이 간극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구도, 안경, Key로 이들 간극을 살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이 당신의 뜻을 가장 분명하게 드러낸 것이 예수 그리스도시니까.

하나님의 약속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통하여 이해해야 할 것이다.

에서와 야곱의 간극도 내가 초라하게 오해해버린 운명론이 아니라, 

그리고 내가 과감하게 말해버린 하나님은 불의하다는 오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를 통하여 이해하는 게 맞지 않을까.

그 결과,

나(우리)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에서와 야곱으로 산다.

보다 진실된 것은 에서가 먼저고, 야곱이 해결책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에서의 하나님도 되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도 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야곱을 위해서와 마찬가지로 에서를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요, 죄인을 약속의 자녀로 만드는 방식이다.

이렇게 하여 로마서 9장에서 이중 예정은 힘을 잃는다. 

그러면 만인 구원인가?

글쎄…

두 가지만 얘기하고 싶다.

하나님의 주권(뜻)은 이중 예정에 역사하는 만큼 만인 구원에도 역사할 것이다.

만인 구원까지는 잘 모르겠으나,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고, 부활하셨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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