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창록 교수의 칼 바르트 시간관 비판 논문을 읽고

By | 2017년 9월 8일

하나님 시간 때문에 알게 된 인간의 시간

논문: 오창록, “하나님의 영원성과 시간성에 대한 칼 바르트의 이해”, 조직신학연구(2007), 211-235.

1. 바르트는 왜 하나님의 시간성을 강조했나?

바르트의 시간 개념에서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질적으로 다르다. 하나님의 시간이 참 시간이요, 인간의 시간은 그 하나님의 시간에 의해 창조된 시간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시간은 영원의 시간이다. 반면에 인간의 시간은 한 편으로는 하나님으로부터 선사받은 시간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타락과 죄인의 시간이다.

오창록 교수는 아래와 같이 바르트가 하나님의 시간성을 강조한 이유를 정리한다. 바르트가 하나님의 시간성을 강조하게 된 이유는 그의 신학이 기독론 강조의 측면 때문이다(211). 전적으로 타자로 존재하는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맺으려는 사건을 성육신이라고 할 때, 이 성육신의 사건을 시간 개념으로 보면 전적으로 다른 시간에 계신 하나님이 시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을 위해 시간을 가지셔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바르트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성육신을 강조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시간성은 자연스레 함께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인간과 관계를 가지시기 위해서는, 불가피하게 그의 영원 속에 시간성을 갖지 않으시면 안 된다”(215f.). 또한 “바르트에게 있어, 인간은 ‘몸의 영혼’으로서 살아야 하는 그의 본질적 속성 때문에 반드시 시간을 필요로 하며, 이러한 인간과 관계를 가지고자 하시는 하나님은, 그 분의 영원한 존재 속에 반드시 시간성을 가지셔야만 한다는 것이다”(216). 그러므로 하나님의 시간은 성육신의 시간이요, 계시의 시간이다. 그런데 계시의 시간을 성육신의 시간으로 본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행동의 시간이다(219). 여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하나님의 행동의 시간이 ‘인간을 위한 시간’이라는 점이다(217).

2. 바르트의 시간 이해가 모호하며 비실제적이다?

오 교수는 바르트에 대한 존 예이츠(John Yates)의 비판에 동의한다. 예이츠는 바르트가 영원의 문제를 논의할 때 내적으로 모순되어 있다고 한다. 그 비판을 정리하면, 하나님의 영원성으로부터 규정된 인간의 시간성이 시간의 자연적 실제성과는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이다(222f.). 다시 말해서 계시의 참 시간이 영원한 현재로서 인간의 시간과 모든 곳에서 동시적으로 만날 때(225), 이 두 시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것이다(224, 227). 이것은 바르트가 하나님의 시간만을 말한다면 괜찮으나, 우리의 잃어버리고 타락한 시간도 언급한다면, 어떻게 이 두 시간을 나눌 수 있을까? 라는 비판이다(231). 왜 바르트는 시간이란 단어를 사용하면서 전혀 다른 개념에서 그 용어를 말하느냐는 것이다(229). 비판자들에 의하면,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의 구분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231). 그렇지 않으면 인간의 시간은 자기 의미와 위치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234).

비판자들은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이 대립하여 양립할 수 있는가(226)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계시의 시간을 통해 끌어 올려진 인간의 시간을 말하면, 인간의 구체적인 시간과 존재는 그 위치를 찾지 못한다(232)고 한다. 비판자들이 바르트에게 참 시간의 실체가 뭐냐고 되묻고 있는 것은, 그들이 여전히 ‘하나님의 시간 때문에 인간의 시간이 시작되었으며, 그 시간은 주어진 시간’이라고 하는 바르트의 말을 새겨듣지 않고 있다는 표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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