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과 대화하는 신학(벨커)을 읽고 (2012)

미하엘 벨커(M. Welker)는 <신학과 자연과학의 대화>를 연구한 것을 총정리하여 2012년 초에 노이키르헨 출판사(Neukirchener Verlag)에서 The Theology and Science Dialogue. What can Theology Contribute?를 출판합니다. 2012년 3월 한국에 온 벨커는 이 책의 요약이라 할 수 있는 강연을 합니다. 1 이 글은 2012년 3월 방한해 강연한 벨커의 “자연과학과 대화하는 신학”을 읽은 것입니다.

1.  읽기 전 질문하기

  • 벨커는 신학과 자연과학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제목이 이미 말해준다.
  • Why : 왜 양자의 대화가 필요하다고 할까?
  • How: 양자의 대화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할까?
  • 접촉점: 양자의 대화가 가능하다면 어디에서 연결된다고 할까?

 

벨커는 4가지로 나눠 신학이 자연과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을 고민하나, 내가 보기엔 양자의 태도에 두 가지를 할애하고 두 가지는 이렇게 대화를 시작하자며 제안하고 있다.

1. 신학과 자연과학의 대화에서 양자가 가져야 할 대화의 태도는 우선 한 쪽의 전문가라도 다른 쪽에서 보면 비전문가일 뿐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양자는 상호수정을 해야 할 의무와 성실성을 지녀야 한다. 그러므로 양자는 서로 인식할 대상(주제)을 적절히 제시해야 하고, 당연히 상대방의 편견을 수정해야 한다. 신학쪽에서 보면, 인식 주제에 대한 정확한 신학적 입장을 제시해야 한다. 벨커는 이에 대한 실례로 창조 문제를 제시한다.

2. 신학과 자연과학 사이에 작은 다리부터 놓는 작업이 필요하다. 상호 대화의 공동 좌표계를 설정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신학은 주관적이고 정서적이며 보이지 않는 영역을 다룬다고 본다. 이에 비해 자연과학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이며 보이는 영역을 다룬다. 벨커는 이런 식으로 구분하고 나누기만 하는 것은 의미 없다고 본다. 벨커는 공통의 대상을 설정해 다원적 전망을 열자고 한다. 그는 예를 들어 양자가 창조론에서, 종말론에서, 인간학 등에서 공동의 주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특히 바울의 몸(soma) 이해를 제시한다. 이 주제를 놓고 다원적으로 접근해 보자는 거다. 벨커는 지금까지 양자의 대화는 초기 단계로서 서로 자기 주장을 조심스레(겸손히) 개진하는 수준이라고 진단한다.2

 

2. 논문을 읽은 후

왜 신학과 자연과학이 대화해야 하는가? 이것은 나 혼자서는 반쪽 지식일 수밖에 없다. 도킨스의 예에서 잘 드러났다.

신학과 자연과학은 어떻게 대화해야 하나? 공통의 주제를 설정하고 조심스레 자신의 견해를 개진해야 한다.

어디서 신학과 자연과학은 만날 수 있을까? 창조론, 종말론 등등. 특히 인간론에서(예: 바울의 몸 이해)

벨커가 제안하는 태도에서 볼 때 -물론 벨커도 약간은 부정적으로 적고 있지만- 도킨스 같이 신학 필요 없다는 식으로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은 대중적 인기를 끌 수 있을지는 몰라도 학문적 대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아무 도움도 안 된다. 또한 도킨스를 무신론 전사로 보고 그의 공격을 막아내려고 신학이 애쓸 필요도 없다. 어쨌든 이렇게 한 영역과 다른 한 영역 사이에 작은 다리를 놓는 작업이 어찌 신학과 자연과학에만 필요할까!

 

  1. “자연과학과 대화하는 신학”,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선교훈련원 주최/생명신학협의회 주관 미하엘 벨커 교수 초청 학술강좌, 2012. 3. 29. 그는 이와 연관된 주제로 2000년 9월에도 강남대학교에서 강연한 적이 있습니다. http://kerygma.pe.kr/archives/283
  2. 이러한 작업의 결과물 가운데 번역된 것을 소개하면, 미하엘 벨커, [종말론에 관한 과학과 신학의 대화], 대한기독교서회,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