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허타도, 이주만 옮김,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 이와우 2017

By | 2018-03-09

래리 허타도, 이주만 옮김, 처음으로 기독교인이라 불렸던 사람들, 이와우 2017

 

이 책은 책 뒤에 참고문헌을 10쪽이나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지만, 저자가 참고문헌을  펼쳐 놓고 논문 쓰듯이 이 책을 쓴 게 아니라 구술하듯 썼다는 느낌을 준다. 그만큼 저자가 이 분야에서 해박하구나! 엄지 척하는 데가 여러 곳이다.  저자는 독자에게 이 책을 매우 친절하게 썼다. 들어가는 말과 맺음말을 제외하면 내용은 전체 4장인데, 각 장마다 요약 정리를 해놨다. 그것만 봐도 저자의 견해를 알 수 있다. 더 빨리 그의 견해를 파악하려면 맺음말만 읽어도 된다. 모름지기 책은 어렵게 써야 연구도 되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밥 씹어주듯 하니 저자에게 감사를…

허타도는  초기 기독교가 로마 문화나 당시의 다른 종교와 달라도 아주 달랐다는 것을 1장에서는 우상숭배 금지에서 찾고, 2장에서는 이교도들이 기독교를 위험한 종교로 보았다는 현상에서 찾고, 3장에서는 기독교야말로 책의 종교(내가 제일 흥미롭게 읽었다)로서 로마 시대의 철학이나 다른 종교에 비하면 넘사벽 수준이었다고 하고, 4장에서는 초기 기독교가 현대의 종교들이 말하는 윤리 문제를 개인은 물론 사회 전반에 각성하고 있다는 데서 찾아내어 초기 기독교가 당시에 가장 영향력을 미친 종교라는 걸 논증한다.

다만, 윤리 문제에 있어 초기 기독교와 당시 철학 학파의 언급이 유사하나 그래도 기독교가 다르다는 부분은 설득력이 좀 떨어진다. 저자가 너무 초기 기독교와 당시 문화(종교, 철학 등)와의 차이를 강조하려나 보니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나 싶다(221, 233, 245 등).

밑줄 그은 것을 소개해 보면 …

“초기 기독교가 당시의 여러 종교 집단과 얼마나 유사했는지, 또는 얼마나 달랐는지에 대한 조사는 많이 이루어졌다. 기독교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 역사 속에서 발생해 성장한 만큼 여느 역사적 현상을 다루는 것처럼 다룰 수도 있다. 기독교에는 로마 시대의 문화적 환경과 닮은 요소들이나 빚진 요소들이 있다. 유대교에서만 영향받은 것은 아니지만, 특히 유대교의 전통은 장차 ‘기독교’로 성장할 종교 운동의 모체 역할을 했다. 이 둘의 유사성을 부정할 생각은 없고, 대신 나는 몇 가지 차이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런 차이점들이 지금까지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고, 바로 이 차이점들이 근대 세계의 틀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16-17) – 저자가 책을 쓰는 큰 틀이다. 내겐 차이점이 제대로 조명받지 못했다는 저자 말이 낯설다.

“기독교를 믿는 것은 당시 로마 시대의 여러 종교나 신앙 중에서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음을 …” (41)

“기독교인들은 신들에게 제사를 올리던 일도 그만두었고 … 이는 여러 사람들에게 경제적으로 악영향을 미쳤다.” (44) – 예나 지금이나 경제에 위협이 되면 큰일난다.

“사회적으로 받는 괴로움과 장차 받을 박해에도 불구하고 예수 추종자가 되고 싶을 만큼 초기 기독교가 제공하는 가치가 있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61)

“여러 신들에게 예배하기를 대놓고 거절하는 행위는 비정상적이고 반사회적으로 보였고, 심할 경우 불경스럽고 반종교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80)

“이미 유대인들이 이방의 신들을 향한 배타적 태도를 드러냈다면, (식민지의 종교를 인정한 로마가) 초기 기독교인들의 배타주의를 어째서 유난하고 놀라운 일로 받아들였는가 하는 부분이다.” (86) – 내 가려움도 바로 여기다. 저자도 시원하게 긁어주진 않는다. 나는 간편하게 경제 위협이 정치의 위협이 되는 위험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이기에 박해가 혹독했다고 본다. 다만 아래 인용에서 저자의 의도를 슬쩍 느낄 뿐이다.

“초기 예수 운동이 유대교의 수사와 ‘유일한 하나님’ 만을 숭배하는 제의를 그대로 따라 하고 있는 건 맞다. 하지만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예수 운동 신봉자들이나 ‘기독교인’은 그들의 신앙과 예배 양식에서 당시 유대교 전통에서는 전례가 없는 특별한 지위를 예수에게 부여했다.” (108) – 저자는 이위일체가 기독교와 유대교를 가르는 분기점으로 본다. 이것은 유대교와 초기 기독교의 상이점일뿐 로마의 초기 기독교 박해의 결정적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싶다.

“이 종교 운동(예수 운동)에서 예수가 차지하는 특별한 위상은 다른 이들은 몰라도 이 운동을 용납할 수 없는 변종으로 보았을 적잖은 수의 유대인들과 첨예한 갈등을 빚는 근원이 되었음이 분명하다.”(130)

“초기 기독교의 경우에는 서기 3세기에 들어서기 전까지 이렇다 할 교회 건축물이나 비문은 알려진 게 없지만 기독교에서 생산된 문서들은 엄청나게 많았다.”(153)

“사실 바울 서신의 문학적 특징과 내용은 로마 시대의 종교 집단보다는 철학 학파들과 더 유사하다. 비기독교인들의 ‘철학 편지’를 비롯해 당시에는 다양한 목적으로 편지 형식을 빌려 글을 쓰곤 했다.”(155) – 물론 저자는 바울이나 교부들의 편지 형식 문헌이 철학 학파의 것보다 넘사벽이라고 한다. 난 여기서 양식사 연구의 내포된 위험성도 본다.

“특히 요한계시록은 초기 기독교가 ‘텍스트’를 중요하게 여겼으며, ‘유난히 책을 좋아하는’ 종교였음을 입증하는 유력한 증거다.”(162) -저자는 요한계시록이 구전 기록이 아닌 아예 처음부터 문자 기록인 점이 중요하다고 한다.

“기독교인들은 그러나 일반의 추세와는 달리 코덱스 책을 선호했다.”(172) – 두루마리를 volume이라 하고, 현재의 책 형태를 코덱스라 한다. 저자는 통계로 볼 때 로마는 볼륨을, 기독교인들은 코덱스를 선호했다고 한다. 앞으로 인용할 때 vol. 1 이런 식으로 표기하는 걸 cod. 1 로 바꿔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노미나 사크라(nomina sacra)는 순전히 시각적인 형태로만 구현되었으며 기독교인들이 그들의 신실함 혹은 경건함을 시각적으로 표시했던 상징적 장치로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증거다.”(181) -물론 저자는 구약의 야훼 표기 방식도 언급한다. 이것과 초기 기독교의 ‘이에수스’의 노미나 사크라는 차이가 있다. 야훼는 표기뿐 아니라 소리도 다르게 읽어 오리무중이라면, 이에수스는 표기만 그렇게 했지 발음은 올바르게 했단다.

“초기 300년 동안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 사회적 관계에서 수시로 치러야 했던 비용은 초기 기독교의 독특함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표였다.”(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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