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 오성현 옮김, 기도 (복 있는 사람, 2017)

By | 2018-03-17

이 책은 주기도에 대해 종교개혁자들(루터, 칼뱅)이 닦아놓은 길을 1940년대 후반에 바르트도 걸어본 흔적이다.

바르트는 주기도의 여섯 간구 가운데 앞의 세 간구와 뒤의 세 간구를 십계명의 두 영역(1-4, 5-10)에 매치된다고 본다.1  바르트가 보기에, 주기도의 1-3기도는 기도자가 기도할 수 있는 원천이고  4-6기도를 할 수 있는 근거다. 그는 이 두 영역(기도)은 통일성을 이룬다고  본다. 바르트가 가장 강조하는 것(소위 말끝마다 강조한다)은  ‘하나님이 기도자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신다. 아니 이미 들으셨다.’는 거다. 그것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로 표현한 것이 ‘우리 아버지’다. 이게 주기도(십계명도)의 여섯 간구의 통일성의 근거인데, 특별히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에서 찾는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근거를 성탄절과 성금요일과 부활절과 오순절의 큰 흐름에서 찾되 특히 부활절을 주목한다.

여기서 나는 바르트가 요한복음 17장의 실현을 그리고 있구나 싶었다. 거기서 예수님은 당신과 하나님의 관계에 사람도 넣어달라고 당신 아버지께 요청한다. 그 요청이 수락(부활)되자 우리(나)는 예수님을 뒤따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관계에 들어갔다. 바르트의 주기도를 읽으며 드는 생각은, 주기도는 하나님이 인간(모든 피조물)에게 하신 일의 요약이라는 거다. 그러므로 기도자는 시간을 살고 있기에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차원으로 나눠 기도할 뿐, 기도자의 기도 시점(현재)에는 감사의 기도만 남는다.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일에 대한 반추와 감사의 행위다.

바르트의 교회교의학이 방대해 읽기 벅차다면 그의 로마서를 읽으면 될 거다. 로마서마저 두껍다 싶으면 이 책을 읽으면 좋다(강연/논문 형태로는 ‘하나님의 인간성’을 보면 된다). 문고판 크기로 120쪽 정도(바르트 서문 및 해설 부분만)인 이 책도 부담스럽다면, 이 책에는 바르트가 주기도를 설명하며 자기 설명에 근거해 기도한 부분들이 나온다. 바르트의 이 기도들이 그가 하고 싶은 말의 알파와 오메가다.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기도할 담력을 얻는 것이 중요하고 가장 큰 보람일 것이다. 바르트의 글은 쪽마다 밑줄을 긋는 부분이 나오지만, 그래도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종교개혁자들은 기도에 관한 한 서로 의견이 일치했기에, 사태의 근거에 대해 한 목소리를 낼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함께 기도할 수 있다면, 또한 틀림없이 공동의 성찬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36-37)

“그들에게(종교개혁자들) 기도는 말과 생각이자 동시에 삶이었습니다.” (40) – 바르트는 기도의 생활화 차원에서 말하지 않고 기도자의 존재적 차원, 곧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여 새로운 인간이 된 자의 삶이라는 차원에서 기도를 말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도할 때와 하지 않을 때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기도는 하나님의 행동에, 나아가 하나님의 존재에 영향을 미칩니다.” (51) – 가장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물론 기도 강조 차원에서 이 말을 한 것은 납득할 수 있으나, 그가 책의 여러 곳에서 기도자가 기도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하는 말 때문에 이해가 쉽지 않았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이 되셨던 바로 그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 그러므로 그분이 우리의 기도에 굴복하신다고 해서 그분 자신의 존재를 축소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54)

“그리스도인이라는 것과 기도한다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56)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신다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입니다. 기도하기도 전에 우리는 단호한 입장, 즉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으신다는 것을 믿는 입장을 취해야 합니다.” (65)

“예수께서는 그 인간이 그분 자신에게 결속되는 것, 특별히 하나님 곧 그분의 아버지께 그분이 중보할 때 그분에게 결속되는 것을 권하고 허락하고 명령하십니다.” (71)

“우리는 하나님을 부정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잊으실 수도 우리를 부인하실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이시고 본성으로부터 신실하시기 때문입니다.” (73)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이미 들으셨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으로 시작하려 합니다.” (87)

“이처럼 주님의 죽음과 부활에서 현실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기억 속에서, 그리고 보편적 부활에 대한 기대 속에서 살아갑니다.” (93)

“성탄절과 부활절에 시작된 그 시간을 우리는 더 이상 뒤로 되돌릴 수 없습니다.” (101)

“주기도에서 ‘우리’는 ‘나를 따르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대와 명령을 통해 처음으로 생겨났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합시다.” (113)

“우리의 현존을 위해 외적 그리고 내적으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 달라고 간구할 때에,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위해 봉사하라는 그분의 요청을 우리의 준거점으로 삼습니다.” (118)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해야 할 자유를 가집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하라는 계명도 받습니다.” (119)

“하나님의 자녀들은 바로 그 영원한 빵의 첫 열매로서 오늘의 ‘빵’ 얻기를 희망합니다.” (125)

“하나님의 용서는 하나님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인간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비교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영역에서 잘못을 용서하는 작은 일을 틀림없이 실현되게 할 것입니다.” (136)

“깊은 곳에서 부르짖는 주기도의 마지막 간구는, 우리가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을 그분이 이미 행하셨다는 것을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149)

“우리 기도에서 가장 확실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157).

  1. 지금까지 이렇게 보는 분을 두 분 봤다. 한태동 선생님과 김재진 선생님. 무엇보다 한태동 선생님의 <성서로 본 신학>을 봤을 때 놀라웠다. 그런데 바르트 책에서 이 부분을 만나니 놀랍기도 하고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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