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카이 토모아키, 홍이표 옮김, 신학을 다시 묻다, 비아, 2018

By | 2018-03-19
  • 신학이 글자 그대로 신(하나님)을 다룬다고 학문이 아니다는 주장은 신학에 대한 오래된 비판이다. 게다가 신학은 현실에 발을 깊이 담그지 않는 것 같다는 비판도 있다. 저자는 신학이 받은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 답을 한다. 저자가 답을 찾는 방법을 밝힌 책이 이 책이다. 저자는 신학이 태동한 사회적 배경과 그 진행된 역사적 과정에서 신학의 존재의 의미와 근거를 찾아낸다. 그 결과 신학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땅에서(사회에서) 성경을 한 손에 들고 그 시대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대화한 결과물이다. 신학이 교회와 국가의 일치를 가져왔을 때도 있었고, 신학이 국가에서 떨어져 나온 때도 있었고, 신학 내부에서도 교회 밖으로 밀려나거나 혐오를 받았을 때도 있었다. 좌우지간 컨텍스트(사회)에서 텍스트(신학)가 나왔다는 거다. 저자의 주장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학이 시대마다 정치적이었다는 거다. 예수의 선포부터 시작해 미국의 실용주의까지 신학의 사회사적 흐름을 훑은 저자는 한 번 더 신학이 현실성이 지니는지를 묻는다. 후카이는 자신이 훑어본 것처럼 유럽 문화가 신학을 알맹이로 지니고 있다는 게 팩트일진대 신학을 제쳐둘 수는 없을 거라고 본다. 그런데 그는 한 번 더 신학의 존재의 이유를 최대치로 밀어부친다. 그는 (내 짐작으로는 판넨베르크 슐레의 일원답게) 학문의 방법론 자체에서 찾는다.1  땅에서 하는 모든 작업이 가설과 검증의 차원이라면, 즉 상대화 작업이 학문성이라면, 신학이야말로 신 앞에서 철저히 자신을 객관화하는(그 결과 겸손을 말하게 되는) 학문이라고 힘차게 외친다.
  • 처음에 나는 제목만 보고 이 책을 일본 그리스도교사의 특징 정도로 생각했다. 며칠 후 저자가 19세기 독일 개신교 연구로 학위를 받았다는 말을 듣고 그가 19세기 독일 개신교사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듣고 싶어 책을 급히 구했다. 서론에 해당하는 제1장에서 저자의 논점은 뚜렷이 드러난다. 하지만 자신의 주된 연구분야인 19세기 파트를 리츨을 잠시 언급하는 것으로 슬쩍 넘어갔다. 아쉽다. 그래도 신학개론 책 읽을 때 이 책을 같이 보면 수직과 수평으로 그물을 치며 읽을 수 있겠다. 번역과 윤문이 잘 되어 있어 저자가 속도를 내며 써나가는 걸 따라가기 쉬웠다. 어쨌든 밑줄 그은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신학은 분명 ‘교회의 학문’이지만 교회라는 담을 넘어 지속해서 사회의 영향을 받았고 또 사회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10)
  • “프리드리히 니체 이후, 현대 사회는 자신의 의지로 자기 몸에서 신학을 도려냈다. … 현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구조나 사유하는 방식을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신학’의 자리와 ㄱ 존재를 만나게 된다.” (30)
  • “시대별로 신학이 놓였던 사회 상황을 분석하면 그 당시 신학이 무엇으로 존재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36)
  • “사회의 모든 구조가 ‘그리스도교화’되었다는 의미에서 코르푸스 크리스티아눔(하나님의 그리스도교 공동체)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이 구조를 지탱한 것은 앞서 이야기한 두 가지, 즉 시간과 죽음의 지배였다.” (76)
  • “중세 시기 신학은 오늘날로 보면 ‘형이상학’과 ‘사회학’을 묶은 학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81)
  • “과학과 마찬가지로 당시에(중세 때) 신하은 정치학이었으며 정치학은 곧 신학이었다.” (92)
  • “종교개혁이 ‘근대의 시작’이라는 견해는 독일의 근대화나 내셔널리즘과 강력히 결합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92)
  • “근대와 달리 종교개혁 시기에도 정치와 종교는 여전히 분리되지 않았다.” (104)
  • “16세기 유럽 대륙에서 일어난 종교개혁 신학은 내셔널리즘과 결합한 보수적인 정치이론이 되어 버렸지만, 17세기 영국에서는 시민혁명, 혹은 사회 변혁의 이론으로 그 임무를 수행했다.” (123)
  • “17세기에 영국에 등장했던 청교도들이 행한 것은 종교라는 시장을 민영화, 자유화, 시장화하는 첫 번째 시도였다.” (120-130)
  • “이 비판은(기존 교회나 종교체제 비판) … 예수에게로, 좀 더 정확하게는 성서 기록으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들이 이어졌고 17세기 이른바 ‘성서주의’라는 신학이 탄생했다.” (135) – 기존 교회체제의 역겨움을 예수의 순수 가르침으로 가라앉혀 보려는 시도의 결과를 생각할 때 아이러니다.
  • “18세기 계몽주의는 종교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139)
  • “전문적인 장의사의 등장은 ‘죽음’에 대한 교회의 독점 구조를 무너뜨렸다.” (145)
  • “미국 헌법이 국교회, 공인교회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청교도 신학이 미국에서 사회화한 결과다.” (162)
  • “미국의 이러한 ‘민영화’, ‘시장화’ 가운데 그리스도교의 다양한 분파들은 ‘전도’라는 활동을 통해 미국 안에서 서로 경쟁했다.” (168)
  • “우리의 삶이 신의 예정이 실현되는 것을 확인하는, 이념을 검증하는 장소라는 점에서는 예정론이나 실용주의나 다르지 않다.” (177)
  • “근대 이후의 신학은 모두 당대 정신적 상황 아래 당시 유행하는 개념이나 철학, 혹은 지적으로 유행하는 흐름과 만나 그것들을 활용하곤 했다. 이는 중세도 마찬가지다.” (187)
  • “신학이 본래의 모습을 회복한다면 이는 위험하리만큼 ‘상대화’를 추구하는 학문이될 것이다. … 자신의 주장이 무너져 진리에 보다 가까워짐에, 진리가 좀 더 환하게 밝혀짐에 신학자는 기뻐할 수 있다.” (195)
  1. 판넨베르크가 말하는 신학의 학문성에 관한 연구는 내 선배인 이장섭 박사의 논문을 보면 된다. 이장섭, <판넨베르크의 신학의 학문성>, 케리그마출판사, 2013. 현재 재고 없음. 대신에 판넨베르크 신학에 대한 강의영상은 있음: http://kerygma.kr/pannenbe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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