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위안(보에티우스, 이세운 역, 필로소픽, 2014)

이 책은 보에티우스가 출세가도를 달리다가 정치적 모함을 받아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져 유배 당해 죽음을 기다리며 철학의 여신과 대화를 나눈 기록이다. 보에티우스가 가상의 철학의 여신을 상대로 묻고 답을 얻은 기록이기에, 사실상 자문자답의 책이다.

이 책은 총 5권으로 나뉘어 있는데, 분량은 책 한 권을 5장으로 나눈 정도이다. 토마스 아퀴나스가 신학대전에서 최고선(?)을 설명할 때 이 책에 의지했단다(20). 각 권을 간략하게 소개하면 이렇다.

1권: 보에티우스는 신이 모든 것을 관장한다면 자신의 억울함을 헤아려주기는커녕 어떻게 자기만 쏙 빼놓을 수 있느냐며 비참한 운명을 토로한다.

2권: 철학의 여신은 네가 느끼는 운명은 양면성을 지닌다고 답한다. 좋든 싫든, 행복하든 슬프든 운명이라는 거다. 철학의 여신은 자연은 운명의 양면성을 거스르지 않는데 인간인 너는 왜 운명을 탓하냐며 그를 부드럽게 타이른다.

3권: 최고선의 상태가 행복이라면 참된 선은 쾌락, 재물, 권력, 명예, 심지어 영광에도 없다. 이 모든 것은 탐욕이 그려내는 허상일 뿐이다. 행복은 그런 것들로 충족될 수 없다. 좋은 것을 다 모아도 참된 행복에 이를 수 없다. 그럼 선은 어디에 있나? 참된 행복은 최고선인 신 안에 있다. 철학의 여신은 신을 부르라, 찾으라고 요청한다.

4권: 보에티우스는 다시 질문한다. 최고선인 신의 왕국에 부조리가 있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철학의 여신은 최고선인 통치자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니 모든 것이 제대로 될 것이라는 점을 의심하지 말라고 한다. 즉, 신의 섭리를 의심하지 말라는 거다(176). 최고의 섭리는 악한 것들이 선하게 되는 것이다(185). 섭리가 운명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것은 이해의 영역은 아니며, 다만 모든 운명은 선하다(189).

5권: 보에티우스는 물러서지 않고 질문한다. 신의 왕국에 우연은 없느냐? 모든 것은 원인의 얽힘이다. 한마디로 우연은 없다. 개인의 자유의지와 신의 섭리는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신의 섭리는 의지의 자유를 현재화 한다. 필자의 말로 표현하면, 신에게는 미래(혹은 시간)가 없고 현재만 있다(영원).

보에티우스가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학문과 삶의 결과물로 내놓은 <철학의 위안>의 결론은 최고선인 신의 섭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거다. 그가 신플라톤 철학에 영향을 받았으니 철학적으로 정리하면, 일자로부터 유출된 것이든 거기로 회귀하여(에로스) 합일하게 되는 모든 것은 일자의 섭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