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의미. 역사적 교회에 관한 신학적 탐구>(로완 윌리암스)

1. 역사 만들기. 우리는 과거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한 줄 느낌: 시간 속의 그리스도인은 역사적 존재로서 역사를 만든다. 제목에서 이미 저자의 생각이 드러난다. 저자는 과거를 들여다보는 사람에게 과거는 사건의 의미 없는 연속이 아니라는 사실을 놓치지 말라고 한다. Historie가 아닌 Geschichte가 역사다. Geschichte에 중립적 역사는 없다. 역사는 만들어진다.  역사 만들기는 무엇을 목적으로 하는가? 무엇을 지향하는가?  “최초의 그리스도교 역사가들이 의식적으로 의도했던 것보다 (우리는: 내가 첨가) 훨씬 더 나아가야 합니다.”(28) “여기서 핵심은 종교개혁이 교회의 과거를 바라보는 새로운 태도를 만들어냈다는 데 있습니다.”(55) 역사 만들기가 역사 날조는 아니다. 역사는 주체의 자기 정체성 확립, 주체의 역사 의식/관점에 따른 해석이다. “정체성이 흐릿해질 때, 정체성이 의문시될 때 우리는 과거를… Read more<과거의 의미. 역사적 교회에 관한 신학적 탐구>(로완 윌리암스)

김용규, 그리스도인은 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가?(IVP)

책이 워낙 컴팩트해서 요약이란 말이 무색하나 몇 줄로 스케치 한다. 신학 및 인문학의 패러다임 전환: 신본 -> 인본 -> 포스트모던지금의 상황(포스트모던): 너도 주체, 그럼 나도 주체, 우리 모두 주체. 분위기 좋음(호모 데우스 시대 펼쳐지나 싶었는데).유발 하라리 등장: 갑자기 도사가 나타나 다 끝장남을 설파. 파국으로 치닫는 차의 브레이크가 어디 있는지 모를 뿐 아니라 찾아내 밟아도 파국을 피할 수 없다.저자 김용규의 제안: 1. 신학은 인문학과의 대화를 통해 성장한 역사를 잊지 말자. 2. 기독교 신학의 모순 끌어안기 DNA(예. 참 신이며 참 인간 예수)를 선용하자. 이 능력을 머리 몸 가리지 말고 전 지구적으로 발휘하자.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조한별)

*이 책을 2016년에 읽었다. 몇몇 인상적인 부분을 적어 놓은 기억이 나서 블로그를 뒤졌으나 안 보였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찾아서 이곳 블로그로 옮긴다. 혹시나 싶어 구글 검색을 했더니 찾던 메모가 페이스북에 있다는 걸 알려준다. 구글 대단하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조한별 씨가 쓴 <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이란 책을 보고 우리 연구원 강의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지하철을 오가며 읽었다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저자가 학부 졸업생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글을 쓰고 있어서 놀랐다. 사슬처럼 써 나가는 방식, 자문자답 방식, 각 장이 독자를 점점 더 깊이 끌어당기는 방식 등등. 사실 세인트존스 대학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공부를 시키는지)를 슬쩍 보려고 했는데 인상적인 구절도 보여서 소개한다. 어쨌든… Read more세인트존스의 고전 100권 공부법(조한별)

박정관, 성서해석학

잘 쓴 책을 만났다. 박정관의 성서해석학이다. 1부는 저자가 (성서)해석학을 공부한 결과를 차분히 풀어낸 부분이다. 이걸 바탕으로 성서를 어떻게 볼까가 2부이고, 3부는 구체적인 예를 알려준다(1부만 읽음). 1부 전개에서 흥미로운 것은…칸트가 인식론을 시작하며 시간과 공간을 세팅했는데, 저자도 칸트처럼 세팅을 한다. 저자는 공간 문제는 스킵하고 시간을 다루면서 그 유명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시간 이해를 들고 나온다. 현존재는 기억과 회상을 통해 과거로 갔다가 거기서 기대와 상상을 통해 미래로 간다. 저자는 이제 현존재의 언어를 세팅한다. 언어에서는 단어와 맥락이 중요하다. 현존재의 특정한 시간 경험의 스토리(내용)를 적절한 형식(서사)으로 서술하면 현존재의 이해 행동으로 이어진다. 해석이 이뤄지는 거다. 저자는 이를 해석적 직관이라고 한다. 직관이라고 하니 감각적인 느낌 정도만으로 제한하기 십상인데 저자는 가다머의 지평융합,… Read more박정관, 성서해석학

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손성현 옮김, <도스토옙스키>

투르나이젠의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마음에 밟히는 문장을 적어 본다. 괄호 안은 내가 쓴 거다.  인간 쪽에서는 저쪽으로 넘어가는 다리가 놓일 수 없다는 것을! … 혹시 하나님 쪽에서라면 어떨까? 35 에로스의 마술이 더 강력한 마술 앞에 무릎을 꿇었다고나 할까? 62.  (물론 여기서 에로스는 내용상 육체적 사랑이겠으나, 83쪽 인용과 관련해서 난 지혜 또는 존재에 대한 열정으로 보고 싶다. 하나님을 향해 에로스를 발휘해 달려가도록 세팅되었다고는 하나 35쪽 인용과 관련해 볼 때 실패!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이 제시하는 마지막 너머의 마지막 한마디는 부활이다. 온 인류가 어두운 낭떠러지 아래서 허우적대고 있지만 그 위로 위대한 용서의 빛이 비쳐온다. 80 인간은 결국 하나님을 향하도록 지어진 피조물이라는 사실이… Read more에두아르트 투르나이젠, 손성현 옮김, <도스토옙스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