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tegory Archives: 단상

순교자

“영원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피를 흘려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피는 다른 종류의 피다. 수천이 넘는 맞아 죽은 희생제물이 된 동물들의 피가 아니다. 이 피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귀한 피, 순교자들, 즉, 이 힘차게 죽어 간 자들의 피다. 이들은, 수천명의 목을 자르게 한 살아 있는 자는 할 수 없고, 또 이 힘차게 죽어간 사람들 자신도… Read More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나사렛 출신의 예수를 메시아로 고백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예수는 그리스도” 이 말은 그리스도교의 뿌리다. 적어도 신약성서 27권은 이 간단한 문장에서 하나로 모인다. 그런데 구약을 관통하는 말은 무엇일까? 구약도 “예수는 메시아”라는 이 명료한 말로 전체를 아우를 수 있을까? 이스라엘이 경험하고 후에 고백했던 하나님을 나사렛 예수와 연결시키면 구약과 신약의 핏줄은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결고리는 과연… Read More »

본회퍼의 마지막 설교

1. “버림받은 예수님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라고 외치셨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언젠가 한번 자신의 생애 가운데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모든 일이 거꾸로만 돌아가고 있을 때, 이 땅의 모든 소망이 사라질 때, 저항할 힘도 없이 원수의 손에 넘겨질 때. 누구나 다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하게 될 것입니다. 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Read More »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거야

우리가 간증을 좋아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마치 헐리웃의 영화처럼 험난한 줄거리를 모두 보상해주는 해피앤딩에 있지 않을까. 간증에서 백미는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손이다. 온갖 고난을 다 소멸하고, 보상해 주는, 해피앤딩으로 잡아 이끄는 손 말이다.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땜에 내일은 행복할거야”   우리는 과거와 오늘은 알지만, 미래는 아직 모른다. 물론 어떤 사람은 적어도 기독교는… Read More »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어제 몇몇 분과 설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들 설교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토로하고 있었다.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우선 이 말에는 성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의 문제가 놓여 있다. 요즘 기독교사상에다 설교비평을 하고 있는 정용섭 목사는 성경을 올바로 읽어내려면 인문학적 눈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분의 주장을 내가 이해한 바대로 정리하면, 설교할 성경구절에 설교자의 사사로운 감정, 느낌, 견해를… Read M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