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캇 맥나이트, 전의우 옮김, 파란 앵무새. 오늘 우리를 위한 성경 읽기, 성서유니온, 2018.

스캇 맥나이트, 전의우 옮김, 파란 앵무새. 오늘 우리를 위한 성경 읽기, 성서유니온, 2018.   이후로도 20년 동안 이 고민을 지속한 결과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게 성경을 살아 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야말로 우리 시대를 압박하고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25) 우리는 참새들이 그랬듯 두려움을 극복하고 성경의 파란 앵무새가 내는 이상한 소리에 적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성경의 파란 앵무새를 길들이려 해서는 안 된다(35). 성경에 통달해서 그 모든 내용을 내가 만든 체계 속에 넣으려는 욕심 때문에, 성경 그대로의 생생하고 기묘한 맛이 사라졌다. 나는 파란 앵무새를 가두어 길들이고 있었다(51).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구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종이에 인쇄된 2차원적 글을 하나님과 마주하는 3차원적 만남으로 바꾸는… Read more스캇 맥나이트, 전의우 옮김, 파란 앵무새. 오늘 우리를 위한 성경 읽기, 성서유니온, 2018.

제프리 그린먼, 한문덕 옮김, 주의 기도. 그리스도교 기도의 처음과 끝, 비아, 2018

제프리 그린먼, 한문덕 옮김, 주의 기도. 그리스도교 기도의 처음과 끝, 비아, 2018     인상적인 부분 마태와 누가복음에 나오는 주기도문의 위치(기능)에서 그 중요성 끌어냄(사회사적 연구 아님)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공생애 시작 전 예수님이 당한 시험을 논거로 든 것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 악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할 시험이다. 저자의 전제 인간 기도(노력)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스스로 거룩하다. 그러므로 주기도는 우리의 욕망 추구를 늘 새롭게 조정한다. 하나님의 거룩과 송영이 주기도의 앞과 뒤를 감싼다. 주기도는 내 기도가 아닌 우리(공동체)의 기도 우리 아버지 … 특히 우리의 일용할 양식에서 고조에 달한다고 생각됨 느낌 인간이 주기도를 드리지만 우선권은 하나님께 있다(바르트 느낌). 저자는 주기도를 드리는 인간의… Read more제프리 그린먼, 한문덕 옮김, 주의 기도. 그리스도교 기도의 처음과 끝, 비아, 2018

도이 에이지, 이자영 옮김, 그들은 책 어디에 밑줄을 긋는가, 비즈니스북스, 2017

도이 에이지, 이자영 옮김, 그들은 책 어디에 밑줄을 긋는가, 비즈니스북스, 2017   책을 읽다 좌절하고 뇌를 스펀지 상태로 만드는 것은 경쟁 우위로 가는 티켓인 셈이다.(64) 마케팅의 목표는 판매할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89) 컴퓨터는 결과 분석은 할 수 있어도 그 결과를 초래한 원인은 만들어 낼 수 없다.(157) 지혜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180) 저자의 몇 가지 제안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어? 이거 뭐지? 했던 부분은 “전체를 보지 말고 부분을 보자”는 3장이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게 보통인데, 도이 에이지는 나무에 집중하잔다. 여기서 나무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갈 실마리가 되는 부분이다. 어쨌든 이 책은 일본스럽다(?)는 느낌을 주는 전형적인 책.

로버트 뱅크스, 신현기 역,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IVP, 2017

로버트 뱅크스, 신현기 역,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IVP, 2017     “집으로 들어오면서 실제로 예배는 시작되었지.”(29) “그분이 우리가 계속 함께 먹기를 바라시기 때문이고, 오늘 우리가 함께 모인 이유입니다.”(35) 함께 먹기, 이게 당시에 골칫거리였던 것으로 안다. 냇물엔 빠가사리도 미꾸라지도 이름 모를 물고기도 고디(물고기 아님)도 있으니까. 그것들이 냇물 자체를 망치진 않았다. 집에 들어오면서 예배는 시작 되었다는 구절이 좋다. 아니 그 집을 향해 나설 때부터 예배는 시작 되었겠지. 아니 밥 한 끼하러 갑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였을지도. 마침내 성령의 활동을 말하지 않을 수 없겠다.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보만) 요약(2001)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 T. Boman, 허 혁 옮김,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 분도출판사, 7쇄, 1998. 보만의 저술(연구)방법론: 언어 분석을 통한 두 사유의 비교 저자 보만(T. Boman)은 그리스도교 이해를 위해서는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관계를 고찰해야 한다고 한다. 왜냐하면 유대교 내지 그리스도교가 헬레니즘 세계와 만났고, 옮겨졌기 때문이다. 저자에 의하면 이러한 두 사유의 관계문제의 포문을 연 학자는 하르낙이다(A. von Harnack)이다. 그러나 저자는 복음서의 헬레니즘화를 주장하는 하르낙의 판단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책 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에서 퀵(Canon Oliver Chase Quick)과 루트베르크(G. Rudberg)의 견해를 수용하여, 먼저 두 사유는 내용상으로 비슷하지만, 형식상 차이가 있다고 한다(22-24). 따라서 저자는 자신의 책에서… Read more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보만) 요약(2001)